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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부

클레오파트라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역사가 바뀌었다

by 양영이0925 2021. 6. 22.

역사상 그 어떤 여인보다 극적인 삶을 살았던 클레오파트라의 일대기에 대해 포스팅 해보려고 해요. 로마의 위대한 두 황제를 매혹시키고 39세에 요절한 절세미녀 클레오파트라는 어떤 운명을 살았을까요?

 

기원전 69년 주변 나라가 성장하면서 이집트가 기울기 시작한 그 때 클레오파트라가 탄생하게 됩니다. 이집트 왕조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로 당시 파라오는 근친혼을 따랐는데요. 클레오파트라가 18세의 나이에 10세인 남동생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외국어 습득 능력이 뛰어나고 총명하여 9개 국어가 가능하였고 외교시에도 통역사 없이 대화가 가능했다고 합니다. 어린 나이에 정치, 철학, 과학에 대한 폭넓은 지식에도 능했습니다.

 

남편이자 어린 동생을 대신하여 권력을 잡았으나 왕위에 오른지 3년 후 남매간에 권력 다툼을 하게 됩니다. 그로써 남매의 공동 정치가 무너지게 되었죠. 남동생과의 권력투 쟁에서 밀려나면서 권력을 빼앗겼고 사람들에게 외면당하였습니다.

 

파라오 자리에서 폐위되며 시리아로 도주해야 했습니다. 막다른 골목에 처해진 그녀는 새로운 계획을 세울수밖에 없었죠. 당시 권력 다툼으로 혼란스러운 이집트와 마찬가지로 로마에서도 평민과 귀족의 내전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평민파인 카이사르가 이집트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 방문을 하게 되었는데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 상황을 이용했던 클레오파트라. 하인들이 값진 양탄자를 메고 카이사르에게 다가가 값비싼 선물이라며 양탄자 주었는데 양탄자를 열어보니 클레오파트가 알몸으로 누워 있었다고 합니다. 카이사르는 매우 놀랐지만 클레오파트라의 아름다움에 매혹되고 맙니다. 그때 카이사르의 나이는 50대, 클레오파트라는 20대였습니다.

 

클레오파트라에 여러 의견이 있지만 로마의 역사가에 의하면 바라보기만 해도 활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그녀의 통치 시대에 나온 동전을 보면 큰 눈과 뚜렷한 턱, 크고 구부러진 코가 그녀의 얼굴을 추측하게 해준답니다.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와 연인이 되었고 시민들의 반발에도 카이사르는 파라오 자리를 되찾아 주기 위해 클레오파트라를 지원해 줍니다. 이집트의 안정과 독립을 보장받게 되자 둘 사이에 자식이 태어나게 됩니다. 이집트의 왕조 프톨레마이오스와 로마 카이사르의 이름이 섞인 프톨레마이오스 카이사르가 탄생되게 되죠.

 

 

그런데 이 사랑도 오래가지는 못합니다. 카이사르가 로마로 돌아간 후 자신이 믿던 브르투스에게 암살을 당하게 됩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 왕조의 옛 영토를 찾기 위해 권력을 지탱해줄 대상이 필요했습니다.

 

로마에는 두명의 왕이 권력 잡았고 한쪽이 이겨야 끝나는 상황이었는데요. 이집트의 독립을 보장받기 위해 동방의 안토니우스를 타겟으로 잡게 됩니다. 안토니우스는 전쟁 자금과 보급품을 구하려 이집트로 오게 되는데 그 때 안토니우스에게 접근하여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유혹하게 됩니다. 수수한 안토니우스와 달리 화려했던 클레오파트라의 매력에 사랑에 빠지게 되죠.

 

클레오파트라도 처음에는 나라를 위해 시작했지만 안토니우스의 남자다움과 용맹함의 매력에 끌려 진심으로 사랑에 빠지게됩니다. 처음에 안토니우스를 유혹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클레오파트라를 사랑하게 된 안토니우스는 아내 옥타비아에게 이혼을 요구합니다. 클레오파트라에게 전념할수록 옥타비아누스와 갈등이 심해졌고 순수 로마 혈통인 조강지처를 버리고 이민족 여성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로마인들에게 수치로 여겨졌습니다.

 

 

하여 로마에서는 민심이 옥타비아누스를 지지하고 안토니우스는 비난을 하였습니다. 클레오파트라와 동방에 새로운 국가를 세우려한다는 의심이 퍼지며 더 더욱 안토니우스를 수치로 여겼고 급기야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로마와 이집트의 역사에 길이 남을 악티움 해전이 바로 이 전투입니다.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는 대결을 하게 되는데 안토니우스는 이집트와 연합을 하였기 때문에 옥타비아누스를 압도하고도 남았지만 계산 착오로 위협을 느낀 클레오파트라는 후방에서 후퇴하였고 안토니우스도 작은 배로 전쟁터를 빠져나오게 됩니다.

 

해전의 패배로 클레오파트라가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자결을 시도하였고 죽기 직전 클레오파트라에게 인계되어 사랑하는 여인의 품속에서 죽게 됩니다. 사랑했던 안토니우스의 죽음으로 클레오파트라는 매우 힘들어 하였고 전쟁에서 이긴 옥타비아누스는 클레오파트라와 그 아들을 살려줄 마음이 없었기에 클레오파트라는 죽음을 택하게 됩니다.

 

안토니우스의 묘를 참배한 후 미리 준비한 독사(코브라)를 이용해 자결을 하게 됩니다. 코브라의 독은 맹독으로 신경마비, 근육마비, 호흡마비를 일으킵니다. 이집트의 마지막 여왕이었고 부유했고 강력했던 여왕은 사망 후 어디에 묻혔는지 모를 정도로 역사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그 후 이집트는 멸망하였고 로마는 지중해 부근까지 점령하며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다면 세계역사는 달라졌을것이다

-파스칼-